
특허 분쟁의 승패는 종종 거대한 쟁점이 아니라, 청구항 속 한 줄의 수치(數値)에서 갈립니다. 미국 연방순회항소법원(CAFC)이 2026년 5월 13일 선고한 Actelion Pharmaceuticals Ltd. v. Mylan Pharmaceuticals Inc. (No. 2024-1641, 2026 WL 1314700) 판결은 그 점을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청구항에 적힌 "pH 13 이상"이라는 한정사항(limitation)이, 정작 "어떤 온도에서 측정한 pH인가"를 명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특허권자의 침해 주장이 무너진 사안입니다.
제약·바이오 분야에서 정량적 한정사항을 다루는 모든 실무자께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판단되어, 핵심 쟁점과 실무적 함의를 정리해 드리고자 합니다.
1. 사안의 개요
Actelion사는 자사의 고혈압 치료제 Veletri®(폐동맥고혈압에 사용되는 에포프로스테놀(epoprostenol) 성분 제제)에 관한 미국 특허(제8,318,802호 및 제8,598,227호, 명칭 "Epoprostenol Formulation and Method of Making Thereof")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에포프로스테놀은 혈관확장·항혈소판 작용을 하는 약제이나, 수중에서 화학적으로 불안정하여 산(酸)이 촉매로 작용하면 쉽게 분해됩니다. Actelion은 이를 안정화하기 위하여, 아르기닌과 수산화나트륨 등 염기를 가하여 만든 "pH 13 이상(13 or higher)"의 벌크 용액(bulk solution)으로부터 형성되는 동결건조 조성물이라는 구성을 청구항의 핵심 요소로 삼았습니다.
제네릭 제약사인 Mylan이 특허 만료 전 FDA에 약식신약신청(ANDA, No. 213913)을 제출하자, Actelion은 35 U.S.C. § 271(e)(2) 등에 근거하여 웨스트버지니아주 북부지방법원에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2. 절차적 경위 — 환송 후의 재(再)해석
본 사건은 단번에 결론에 이른 것이 아니라, 한 차례 환송을 거친 사안입니다. 1심 법원은 당초 "pH 13 이상"을 통상의 반올림 규칙(ordinary rounding rules)에 따라 pH 12.5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하였고, 이를 토대로 침해를 인정하는 판결과 영구적 금지명령이 내려졌습니다. 그러나 Mylan의 항소에 대하여 CAFC는 "외재적 증거의 도움 없이는 올바른 청구항 해석에 이를 수 없다"는 이유로 이를 파기·환송하였습니다(Actelion v. Mylan, 85 F.4th 1167 (Fed. Cir. 2023)).
환송 후 1심 법원은 내재적·외재적 증거를 모두 검토하여 "pH 13 이상"을 표준온도(25±2°C)에서 "pH 12.98 이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였고, 이 해석 자체는 이번 항소심에서 다투어지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항소심의 실제 핵심 쟁점은 "13이냐 12.98이냐"가 아니라, "어느 온도에서 pH를 측정하는가"였습니다.
3. 첫 번째 쟁점 — 측정 조건을 적지 않은 청구항
pH는 온도에 따라 그 값이 달라지는 물리량입니다. 동일한 용액이라도 측정 온도가 낮아지면 pH 값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 점에서 양측의 주장은 정면으로 충돌하였습니다. Actelion은 실제 냉장 보관 상태의 "작동 온도(operating temperature)"에서 측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 온도에서라면 Mylan의 벌크 용액도 pH 13을 넘기기 때문입니다. 반면 Mylan은 업계 표준온도(25±2°C)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맞섰고, 그 기준에서 자사 용액의 pH는 12.98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는 점은 다툼이 없었습니다.
문제의 근원은, 특허 명세서가 pH를 수없이 언급하면서도 "pH"라는 용어 자체를 정의하지 않았고, pH를 측정한 조건(온도)을 직접 기재하지 않았다는 데 있었습니다.
CAFC는 청구항 해석(claim construction)의 정석적 순서를 따랐습니다.
- 청구항 문언: "pH 13 이상"이라는 문언만으로는 측정 조건을 알 수 없어, 그 자체로 답을 주지 못한다고 보았습니다. Actelion이 근거로 든 "having(가지는)"이라는 표현도 측정 온도에 관한 단서가 되지 못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 내재적 증거(명세서·출원경과): 명세서가 "알칼리성 환경"을 "pH 7 초과"로 정의하고 있는데 이는 표준온도에서만 성립하는 정의라는 점, 그리고 명세서의 수많은 실험 결과표가 일관된 측정 방식, 즉 표준온도 측정을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1심의 해석을 뒷받침한다고 보았습니다.
- 외재적 증거(USP·전문가 증언): 미국약전(USP)이 "별도 명시가 없는 한" pH는 25±2°C에서 측정한다는 기준을 정하고 있고, 일반 화학 교과서와 양측 전문가 증언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는 점을 확인하였습니다. 특히 명세서의 모든 'pH 13 벌크 용액' 기재가 표준온도 측정값에 부합한다는 데 전문가들의 견해가 일치하였습니다.
이에 CAFC는 "pH 13 이상"이 표준온도 측정값을 의미한다는 해석에 오류가 없다고 보아, 문언 침해(literal infringement)를 부정한 1심 판단을 인용하였습니다.
4. 두 번째 쟁점 — 스스로 좁힌 청구항과 균등론의 차단
문언 침해가 어렵게 되자 Actelion은 균등론(doctrine of equivalents)에 의지하고자 하였으나, CAFC는 두 가지 독립적인 사유로 이를 모두 차단하였습니다.
(1) 출원경과 금반언(prosecution history estoppel)
판결문에 따르면, '802 특허의 출원 과정에서 pH 한정사항은 여러 차례 보정되었고, 등록에 이른 최종 보정에서 청구항 1의 pH 한정이 "pH 12 초과(greater than 12)"에서 "pH 13 이상(13 or higher)"으로 좁혀졌습니다. 이 보정은, 심사관이 "pH 12 이상"의 벌크 용액에 대해서는 예상치 못한 효과(unexpected results)가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진보성 거절을 한 데 대한 대응이었으며, 심사관은 "pH 13 이상"으로 한정된 청구항이라면 등록 가능하다고 밝혔습니다. 심사관은 "pH 12에서조차 안정성이 결여된다는 점이 곧 pH 13의 의의를 보여준다"고도 언급하였습니다.
CAFC는 이러한 진보성 거절 대응을 위한 협소화 보정(narrowing amendment)이 원래 청구범위와 보정된 청구범위 사이의 영역 전부를 포기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Festo 법리를 적용하였습니다. Actelion은 해당 보정이 균등물과는 무관하다는 주변성 예외(tangentiality exception)를 원용하였으나, 심사관이 pH 13을 진보성 인정에 필요한 '예상치 못한 효과'의 분기점으로 본 이상, 그 보정의 객관적 이유는 바로 그 pH 한정과 직접 관련되어 있으므로 예외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습니다.
(2) 공개-헌정 원칙(disclosure-dedication rule)
이와 별개로, Actelion의 명세서는 "벌크 용액의 pH는 약 12.5–13.5, 가장 바람직하게는 13으로 조정된다", "염기는 pH가 11 초과, 바람직하게는 12 초과, 가장 바람직하게는 13 초과가 되도록 가한다"고 기재하여, pH 12.5–13, 12–13, 12 초과 범위를 개시(disclose)하면서도 이를 청구항으로 청구하지는 않았습니다. CAFC는 개시하였으나 청구하지 않은 사항은 공중에 헌정된 것으로 간주된다는 Johnson & Johnston 법리에 따라, Actelion이 이들 더 낮은 pH 범위를 균등물로 회복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개시된 대안들이 상호 배타적이지 않더라도 이 원칙의 적용에는 지장이 없다고 판시한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결국 CAFC는 위 두 사유만으로 균등론 주장이 차단된다고 보아 1심 판단을 인용하였습니다.
5. 실무적 함의
본 판결은 송무 자체보다도, 그 이전 단계인 청구항 작성과 출원 전략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워 줍니다. 제약·바이오 실무의 관점에서 세 가지를 강조하고자 합니다.
첫째, 정량적 한정사항에는 측정 조건을 함께 기재하여야 합니다. pH, 온도, 농도, 점도, 입자 크기와 같이 측정 환경에 따라 값이 달라지는 파라미터를 청구항에 사용할 경우, 그 측정 조건(온도, 압력, 측정 방법, 적용 표준 등)을 명세서와 청구항에 명확히 특정하여야 합니다. 조건을 비워 두면, 법원은 USP와 같은 업계 표준을 기본값(default)으로 삼아 그 공백을 메우게 되며, 그 해석이 권리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둘째, 보호받고자 하는 범위는 명세서에 적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으며, 반드시 청구항으로 청구하여야 합니다. 명세서에 폭넓게 기재해 두면 안전하리라는 통념은 미국 특허 실무에서 통하지 않습니다. 개시하였으나 청구하지 않은 사항은 공중에 헌정된 것으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셋째, 거절 대응을 위한 청구항 보정은 향후 균등론에 미칠 영향을 함께 고려하여 신중하게 설계하여야 합니다. 진보성 거절을 극복하기 위한 한 번의 협소화 보정이, 침해 소송 단계에서 권리범위를 결정적으로 제약할 수 있습니다. 보정의 문언과 그 이유 진술(remarks)은 모두 출원경과의 일부로 남아, 훗날 권리자를 구속하게 됩니다.
6. 맺으며
Actelion v. Mylan 판결은, 외견상 사소해 보이는 청구항 문언의 모호성이 분쟁의 결론을 좌우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경고적 사례입니다. 특히 측정 조건에 민감한 화학·제약 분야에서는, 청구항의 한 줄을 작성할 때부터 "이 수치는 어떤 조건에서 측정된 것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합니다. 출원 단계의 정밀함이 곧 권리 행사 단계의 강건함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본 판결은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줍니다.
참고 판례: Actelion Pharmaceuticals Ltd. v. Mylan Pharmaceuticals Inc., No. 2024-1641, 2026 WL 1314700 (Fed. Cir. May 13, 2026) (Taranto, J.). 환송 전 판결: 85 F.4th 1167 (Fed. Cir. 2023). 1심: N.D. W. Va., No. 1:20-cv-00110 (Bailey, J.).https://www.cafc.uscourts.gov/opinions-orders/24-1641.OPINION.5-13-2026_2693032.pdf
본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한 사례 분석이며, 개별 사안에 대한 법률 자문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구체적인 사안에 관하여는 별도의 검토가 필요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