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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례] 미국 법정에서 한국 기업이 6,000억 평결을 뒤집은 방법 — Insulet v. EOFlow

 

미국 연방순회항소법원(Federal Circuit)이 2026년 5월 28일, 한국 기업 이오플로우(EOFlow)를 상대로 한 인슐렛(Insulet)의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서 4억 5,200만 달러(약 6,000억 원 상당) 규모의 배심 평결을 전부 파기하였습니다(Insulet Corp. v. EOFlow, Co. Ltd., No. 2025-1807, Fed. Cir. May 28, 2026). 의료기기 분야의 굵직한 영업비밀 분쟁이었을 뿐 아니라, 우리 기업이 피고였다는 점에서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가 주목할 만한 판결입니다.

본 글에서는 이 사건의 승패를 가른 소멸시효(statute of limitations) 쟁점을 중심으로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1. 사건의 개요

인슐렛은 웨어러블 인슐린 패치 펌프 '옴니팟(Omnipod)'의 제조사입니다. 이오플로우는 이와 경쟁하는 'EOPatch 2'를 개발하였습니다. 인슐렛은 이오플로우가 비밀유지의무를 부담하던 전직 인슐렛 직원들을 영입한 후 자사의 영업비밀을 침해하였다고 주장하였습니다.

핵심 인물은 Steve DiIanni라는 전직 직원으로, 그는 2018년 3월부터 5월 사이에 이오플로우 측에 CAD 파일, 소프트 캐뉼라 설계·제조 정보, 그리고 옴니팟의 폐색 감지 알고리즘 관련 정보를 넘긴 것으로 인정되었습니다.

매사추세츠 연방지방법원의 배심원단은 4건의 영업비밀 침해를 인정하고 보상적 손해 약 1억 7,000만 달러와 징벌적 손해 약 2억 8,200만 달러를 합한 4억 5,200만 달러의 손해배상을 평결하였으며, 1심 법원은 이를 약 5,940만 달러로 감액하였습니다(Insulet, 2026 WL 1502238). 그러나 항소심에서 이 평결은 전부 뒤집혔습니다.

2. 쟁점: 미국 영업비밀법(DTSA)의 3년 소멸시효

미국 연방 영업비밀보호법(Defend Trade Secrets Act, DTSA)은 영업비밀 침해가 "발견되었거나, 합리적 주의를 기울였다면 발견되었어야 하는 때"로부터 3년 이내에 소를 제기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18 U.S.C. § 1836(d)).

여기서 주목하여야 할 점은, 시효의 기산점이 권리자가 실제로 침해를 '안 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합리적 주의를 기울였다면 알 수 있었던 시점, 즉 '알았어야 하는 때'부터도 시효가 진행됩니다. 이는 우리 부정경쟁방지법상 영업비밀 침해의 소멸시효 기산점 논의와도 비교하여 볼 만한 지점입니다.

3. 법원의 판단 — 시효는 "증명"이 아니라 "주장"할 수 있을 때 시작된다

이 판결에서 다수의견이 제시한 기산 기준은 실무적으로 매우 중요합니다. 법원은 시효가 권리자가 침해를 증명(prove)할 수 있을 만큼 증거를 확보한 때가 아니라, 침해를 주장(plead)하기에 충분한 사실을 알았거나 알았어야 하는 때부터 진행된다고 판시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은 '피고의 접근 가능성(access) + 제품의 유사성(similarity)'이라는 정황증거만으로도 충족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인슐렛은 2023년 8월 3일에 소를 제기하였는데, 문제가 된 정보 유출이 2018년에 이루어진 점을 고려하면 5년 이상이 경과한 시점입니다. 법원은 인슐렛이 늦어도 소 제기 3년 전에는 이 두 요건을 충족하는 사실을 알았어야 한다고 보았으며, 그 근거로 다음의 정황을 들었습니다.

먼저 '접근 가능성'과 관련하여, 인슐렛은 늦어도 2019년 3월경에는 DiIanni를 비롯한 전직 직원들이 이오플로우에서 EOPatch 2 개발에 관여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유사성'과 관련하여, 인슐렛 직원들이 2018년 6월 업계 콘퍼런스에서 EOPatch 2 샘플을 직접 관찰하고 사진까지 촬영하였으며, 내부적으로 해당 제품을 옴니팟의 "복제품(cloned)"이라거나 "놀랍도록 닮았다(stunning resemblance)"고 표현하였고, 이오플로우의 공개된 IPO 투자설명서를 통해서도 관련 설계 특징을 파악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즉, 침해를 의심하고 청구원인을 구성하기에 충분한 객관적 정황이 명백하였음에도 합리적 조사를 게을리한 이상,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여 늦게 제소하였다"는 항변은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취지입니다.

4. 결정적 법리 — "관련된 다수의 영업비밀은 하나의 기산일을 공유한다"

이 판결에서 가장 실무적으로 중요한 부분이 바로 여기입니다.

배심원단은 4건의 영업비밀 침해를 인정하였습니다. 권리자 입장에서는 "비밀별로 시효를 따로 기산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을 것입니다. 일부가 시효에 걸리더라도 나머지로 배상을 확보할 여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법원은 DTSA가 "계속되는 침해는 하나의 침해 청구를 구성한다(a continuing misappropriation constitutes a single claim)"고 규정한 점에 주목하여, 가장 먼저 발견되었거나 발견 가능하였던 침해 시점이 전체 청구의 시효 기산점이 된다고 판시하였습니다. 그리고 본 사건의 4건의 영업비밀은 모두 DiIanni가 2018년 3~5월 동일한 시기에, 동일한 목적(개량형 EOPatch 2의 설계)으로 유출한 것이므로 단일한 기산일을 공유한다고 보았습니다.

주목할 점은, 법원이 이오플로우 제품을 분석하여서는 발견할 수 없는 — 즉 내부 개발에만 사용된 — 영업비밀에 대하여도 동일한 결론을 내렸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외부에서 탐지 불가능한 영업비밀에 대하여는 시효가 영원히 완성되지 않는 불합리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법원은 "동일인이 동일한 피고에게 실질적으로 같은 시기에 같은 목적으로 유출한 모든 영업비밀에 대하여는 시효가 함께 진행한다"는 법리를 확립하였습니다.

하나의 기산일에서 출발한 단일 시계가 이미 완성되어 버린 이상, 4건의 영업비밀 침해 청구 전부가 시효로 차단되었고, 이를 전제로 한 손해배상 평결 역시 통째로 무너진 것입니다. 다만 이 시효 법리에 대하여 Prost 판사는 반대의견을 통해, 다수의견의 'access plus similarity' 기준이 사실상 더 이른 시점에 시효를 개시시키는 'inquiry-notice' 기준에 해당하여 조문 문언에 반하고, 유사 제품을 만드는 회사들 사이에서 인력 이동이 빈번한 현실에서 성급한 제소를 부추긴다고 비판하였습니다.

5. 국내 기업을 위한 시사점

본 판결은 우리 제약·바이오 기업에게 두 가지 실천적 함의를 제공합니다.

먼저 피고 입장에서, 미국 영업비밀 소송에서 소멸시효 항변이 사건의 승패를 좌우하는 강력한 방어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i) 원고가 제품 출시, 콘퍼런스 전시, IPO 공시 등을 통하여 침해를 '주장할 수 있을 만큼' 알 수 있었던 정황이 있었는지, (ii) 복수의 영업비밀이 동일인·동일 시점·동일 목적으로 유출되어 '단일 기산일'로 묶일 수 있는지를 소송 초기에 면밀히 검토하여야 합니다.

반대로 원고가 될 수 있는 권리자 입장에서는, 경쟁사의 유사 제품이나 인력 이동을 인지한 시점에 신속히 내부 조사와 권리행사에 착수하지 않으면 권리 자체를 상실할 수 있다는 경고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영업비밀이 한 번에 다수 유출된 경우, "아직 발견하지 못한 비밀이 남아 있다"는 논리는 미국 법원에서 통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다만 유출의 주체·시기·목적이 서로 다르다면 별개의 청구로 구성하여 시효를 보전할 여지가 있다는 점도 함께 고려할 만합니다.

핵심 인력의 이직과 함께 다수의 기술 정보가 유출되는 상황은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에서도 결코 드물지 않습니다. 본 판결은 그러한 국면에서 '언제 알았는가'와 '언제 행동하였는가'가 권리의 존속 자체를 가른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참고자료

  • Insulet Corp. v. EOFlow, Co. Ltd., No. 2025-1807, 2026 WL 1502238 (Fed. Cir. May 28, 2026) — Dyk 판사 집필, Reyna 판사 가담, Prost 판사 반대
  • 18 U.S.C. § 1836(d)
  • Gibson Dunn, "Federal Circuit Reverses Trade Secret Verdict as Time-Barred, Clarifying When a Defend Trade Secrets Act Claim Accrues" (June 1, 2026)
  • Dennis Crouch, "Old Soil, New Clock: The DTSA Discovery Rule After Insulet v. EOFlow," Patentl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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