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는 최근 제약바이오 사업개발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라이선스 계약 실무 강의를 진행하며 Gilead Sciences(라이선시)와 Galapagos NV(라이선서)가 2019년 체결한 ‘Option, License and Collaboration Agreement(이하 '본 계약')’(하단 첨부)를 분석하였는데, 이번 글은 본 계약 분석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핵심 메시지를 공유하기 위해 재정리한 내용입니다.
본 계약은 선급금 USD 39억 5천만 달러, 지분 투자 USD 11억 달러, 잠재 마일스톤 USD 10억 7천 5백만 달러를 포함한 제약·바이오 역사상 최대 규모의 라이선스 거래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핵심 파이프라인이 연이어 임상에서 실패하면서, 설계된 마일스톤 뿐 아니라 로열티 수취 역시 전액 미실현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이 계약은 라이선스 계약을 준비하는 한국 기업들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집니다. '무엇이 Galapagos를 살아남게 했는가, 그리고 한국 바이오텍은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I. 단순한 라이선스 계약이 아닙니다
본 계약의 성격은 ‘Option + License + Co-Development + Collaboration’에 주식인수까지 결합된 복합 전략적 파트너십으로, 두 회사가 10년간 IP 거래를 중심으로 사실상 하나의 사업체처럼 운영되는 구조를 드러냅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4개 공동위원회 구조입니다. JSC(전략 총괄), JDC(임상·제조), JCC(상업화), JCRC(대외 커뮤니케이션)로 구성된 다층적 거버넌스 체계 아래에서, 본 계약의 당사자들은 옵션 행사 후에는 보도자료, 임상 설계, 상업화 전략 등 주요 사안을 어느 하나도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없습니다.
또한, 당사자간 결속력은 세 가지 층위에서 작동합니다.
① 재무적 결속: Gilead은 선급금과 지분 투자를 통해 Galapagos의 주요 주주(약 25%)이자 라이선시라는 이중적 지위를 갖게 됩니다.
② 운영적 결속: 4개 위원회를 통한 일상적 협력 의무가 계약 유효기간 동안 부과됩니다.
③ IP적 결속: 옵션 행사 전 기간 중 라이선시인 Gilead가 창출한 IP조차 라이선서인 Galapagos에 귀속되는 구조로 인해, IP 측면에서 라이선서 중심의 결속이 유지됩니다.
라이선스 계약 당사자간 이러한 결속력 있는 구조를 설계하는 경우 대규모 자금을 확보할 수는 있겠지만, 라이선시가 주주이자, 자금 사용 감시자이자, IP 공동창출자의 세 가지 지위를 동시에 갖게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사실상 경영권의 일부를 이전하는 거래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라이선서가 이 구조를 설계하고자 할 때에는 자금 사용 제한의 구체적 범위, 지분 매각 제한(lock-up) 조건, 그리고 출구 전략도 협상 의제로 다루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II. 비환급 선급금이 전부를 결정했습니다
본 계약 체결 이후 재무 결과를 한 줄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마일스톤 USD 10억 7천 5백만 달러는 전액 미실현, 비환급 선급금 USD 39억 5천만 달러는 전액 확정.' 구체적으로, 본 계약 GLPG1690(Autotaxin Program)의 ISABELA Phase 3 임상은 2021년 2월 IDMC 권고에 따라 중단되었고, GLPG1972(ADAMTS-5 Program)에 대한 옵션은 2020년 11월Gilead가 행사를 포기하였는데, 핵심 프로그램들의 실패로 계약 내 설계된 마일스톤 구조는 작동 기회조차 얻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Galapagos가 재무적으로 지금까지 생존할 수 있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계약 체결 즉시 확보한 비환급(non-refundable)·비공제(non-creditable) 선급금 USD 39억 5천만 달러입니다. 관련 기사들을 통해 자주 다뤄지는 내용이겠으나, 마일스톤은 주로 임상이 성공해야만 실현되는 조건부 수익이지만, 선급금은 임상 결과와 무관하게 확정되는 수익으로, 마일스톤 총액을 키우는 협상보다 선급금의 규모와 비환급·비공제 조건을 관철하는 협상이 라이선서에게는 생존의 열쇠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임상 실패 시 후속 자금 조달이 극히 제한되는 한국 바이오 시장의 구조적 현실에서, 선급금은 다음 파이프라인의 개발 재원이자 최후의 안전망이 되기 때문입니다.
III. 옵션 행사 전 단계가 가장 위험한 구간입니다
본 계약의 IP 귀속 구조에서 가장 정교하게 설계된 조항은 라이선시가 옵션 행사 전 라이선서의 R&D에 기여하여 창출한 노하우조차도 모두 라이선서에게 자동으로 귀속하는 조건입니다(’Galapagos Program Period Know-How의 자동 귀속 메커니즘’). 이 경우 라이선시인 Gilead는 관련 IP를 즉시 공개하고 권리를 양도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혹시 Gilead가 옵션을 행사하지 않더라도 기여 과정에서 취득한 IP를 보유하게 된다면, Galapagos의 자기 소유 프로그램에 대한 통제권이 훼손되는데, 이 자동 귀속 메커니즘 덕에 이를 사전 차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실무에서 다수 라이선서들이 옵션 행사 후 IP 귀속 설계에 집중하는 반면, 옵션 행사 전 단계에서 발생하는 IP 귀속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협상 초기 단계에 이 구간의 IP 귀속 원칙과 공개·양도 절차를 명시적으로 확보하지 않으면, 상대방이 옵션을 행사하지 않았음에도 라이선서의 프로그램 관련 핵심 IP를 보유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합니다.
IV. 부담은 빼되, 수익은 남기는 Opt-Out 설계
공동개발 구조에서 라이선서에게 부여되는 Opt-Out 권리는 흔히 '탈출구'로 인식됩니다. 그러나 본 계약은 Opt-Out을 단순한 프로그램 탈퇴가 아니라, R&D 의무 수행과 비용 분담에서의 이탈로 명확히 한정하고 있습니다. 즉, Galapagos가 Opt-Out 통지를 발송하더라도, 역라이선스(Galapagos Territory 내 상업화 권리 등)는 유지됩니다. 단, Opt-Out 효력 발생 시 적용되는 구체적인 재무 조건들은 본 계약에서는 기밀처리되어 있어 확인할 수 없었으나, 협상 단계에서 이를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실질적 수익 구조에 큰 영향을 미칠 수는 있습니다.
Opt-Out이 '양날의 검'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는 라이선서측의 개발 비용 부담이 예상보다 커질 때 활용할 수 있는 안전장치이지만, 이탈의 대가로 미래 수익(로열티율 또는 마일스톤의 감축)도 축소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라이선서는 Opt-Out 조항을 설계할 때 반드시 세 가지를 명확히 협상하여야 합니다.
① Opt-Out이 프로그램 탈퇴가 아닌 비용 분담 이탈임을 조항 문언에 명시하여 후일 해석 분쟁을 차단할 것,
② Opt-Out 이후에도 역라이선스와 Respective Territory 내 상업화 권리가 유지됨을 명문화할 것,
③ Opt-Out 시 로열티율·마일스톤 감축 폭을 계약 체결 단계에서 구체적 수치로 확정할 것.
즉, 탈출구를 구상하되, 탈출 이후의 수익 구조는 계약 단계에서 반드시 확정해두어야 합니다.
V. 해지는 끝이 아니라 권리 회수의 시작입니다
BD의 라이선스 계약 협상시 해지 조항(Termination)의 설계는 중요도에 있어서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경우들이 종종 있으나, 실제 계약 검토 단계에서는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조항 중 하나입니다. 본 계약의 경우, 계약이 해지되면 옵션이 행사된 프로그램들에 관해 Galapagos에게 다음 권리(Reversion Rights)가 자동으로 부여됩니다.
① 라이선스: Gilead Collaboration Patents, Joint Collaboration Patents 지분에 대한 독점적·영구적·취소불가능한 라이선스
② 상표: 해당 제품에 독점적으로 사용되는 상표의 이전 (Gilead 기업명·로고 포함 상표 제외)
③ 규제 자료: Regulatory Materials·Regulatory Approvals에 대한 참조권 부여
④ 진행 중인 임상시험: 계속 수행·이관·조기 종료 중 선택권 부여
즉, 본 계약 해지 설계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라이선시가 떠나도 라이선서가 더 강해질 수도 있는 구조'라는 것입니다.
한국 라이선서들이 이러한 수준의 Reversion Rights를 계약서에 확보하지 못하면, 라이선시가 개발을 중단하거나 계약을 해지할 때 기술만 넘겨주고 아무것도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특히, 제약바이오 시장의 임상 실패 가능성을 볼 때, 사실상 해지 조항은 계약 체결의 마지막 순서가 아니라 오히려 첫 번째 협상 의제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겠습니다.
결어
임상 리스크는 마일스톤이나 로열티 수익 구조를 무력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교하게 설계된 계약은 그 리스크를 사전에 헤지할 수 있습니다. 본 계약이 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이 계약이 라이선서의 협상 성공 사례로 평가받는 이유는, 임상 성패가 여전히 불확실한 시점에 전체 딜 밸류 대비 이례적으로 높은 비율의 선급금을 계약 체결시 확보하여 임상 리스크를 최대한 방어하였고, 옵션 행사 전 단계에서조차 라이선시가 기여한 IP를 라이선서에 귀속시키는 조항을 관철하였으며, Opt-Out 이후에도 역라이선스를 통해 상업화 권리가 유지되도록 하고, 계약 해지 시 IP·상표·규제자료가 포괄적으로 복귀하는 Reversion Rights를 확보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네 가지 장치로, 임상이 실패한 최악의 시나리오에서도 Galapagos는 재무적으로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동일한 계약을 두고 Gilead 관점에서는 "제약바이오 역사상 가장 참혹한 거래 중 하나"로, Galapagos 관점에서는 “라이선서에게 가장 유리했던 협상 결과 중 하나’로 업계의 평가가 엇갈리는 것—이것이 바로 계약의 구조가 만들어내는 결과입니다.
임상의 성패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계약서는 단순한 거래 조건의 기록이 아니라, 최악의 시나리오에서도 작동하는 마지막 방어선이 되어야 합니다. 본 기고가 오늘도 협상 테이블에 앉는 한국 제약·바이오 기업의 사업개발 담당자들께 계약 설계에 작은 참고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Gilead Sciences·Galapagos NV 계약서:
본 기고는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된 것으로, 개별 사안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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