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대법원이 제네릭 의약품의 ‘스키니 라벨(skinny label)’과 관련된 분쟁을 직접 판단하게 되면서, 제네릭 출시 이후의 마케팅과 커뮤니케이션 행위가 특허 침해 책임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은 단순히 한 기업 간의 특허 분쟁을 넘어, Hatch–Waxman 체계 하에서 오랫동안 전제되어 왔던 스키니 라벨 전략의 법적 한계를 재정의할 가능성이 있는 사안으로 평가됩니다.
스키니 라벨 제도의 취지와 한계
스키니 라벨은 하나의 의약품이 복수의 적응증을 가지고 있고, 그중 일부 적응증에만 특허가 남아 있는 경우, 제네릭 제약사가 특허가 적용되는 적응증을 라벨에서 제외한 채 FDA 승인을 받을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입니다.
이는 브랜드사의 특허권을 보호하면서도, 제네릭의 조기 시장 진입을 완전히 차단하지 않기 위한 제도적 균형 장치로 기능해 왔습니다.
그동안 실무에서는 비교적 명확한 전제가 존재했습니다.
라벨에서 특허 적응증을 제거했다면, 그 자체로는 특허 침해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인식입니다.
그러나 이번 분쟁은 이 전제가 라벨 이후의 행위까지 포함해도 유효한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Vascepa 사건의 출발점
사건의 중심에는 Amarin이 개발한 Vascepa(icosapent ethyl)가 있습니다.
Vascepa는 처음에는 중증 고중성지방혈증 치료제로 승인되었고, 이후 심혈관 사건 위험 감소라는 추가 적응증을 승인받았습니다.
이 추가 적응증은 유효한 특허로 보호되고 있었고, 해당 특허는 제네릭 출시 시점에도 존속 중이었습니다.
Hikma는 이러한 상황에서, 심혈관 적응증을 라벨에서 제외한 스키니 라벨 형태로 제네릭 제품을 승인받아 출시했습니다.
라벨 문언만 놓고 보면, Hatch–Waxman 체계에 부합하는 전형적인 제네릭 진입 전략이었습니다.
분쟁의 핵심은 ‘라벨 이후’였다
분쟁은 제네릭 출시 자체가 아니라, 출시 이후 Hikma의 외부 커뮤니케이션에서 발생했습니다.
Amarin은 Hikma가 제네릭 제품을 홍보하는 과정에서
- 자사 제품을 오리지널 Vascepa의 ‘제네릭’ 또는 ‘동등 제품’으로 반복적으로 표현하고
- Vascepa 전체 시장 규모를 언급하며 사업적 가치를 설명하는 등
- 결과적으로 특허가 남아 있는 심혈관 적응증 처방을 사실상 유도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즉, 라벨에는 특허 적응증이 없었지만,
마케팅과 공표된 메시지의 전체 맥락은 특허 적응증 사용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었습니다.
하급심과 연방순회법원의 판단 차이
1심 법원은 제네릭 제조사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스키니 라벨이 적법하게 승인되었고, 일반적인 제네릭 마케팅 표현만으로는 특허 침해 유도 책임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취지였습니다.
그러나 연방순회법원은 이 판단을 뒤집었습니다.
연방순회법원은 스키니 라벨의 존재가 침해 유도 책임을 자동으로 면제하지는 않는다고 명확히 했습니다.
법원은 라벨 문언뿐 아니라,
보도자료, 웹사이트 설명, 공개 발언 등 제네릭사의 전체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며,
그 결과 특허 적응증 사용을 적극적으로 유도했다고 볼 수 있다면
유도 침해 책임이 문제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판단은 “라벨만 보면 된다”는 기존 실무 인식을 정면으로 수정한 것입니다.
왜 미국 대법원이 나섰는가
이 사건은 단순히 개별 기업 간 분쟁으로 끝나기 어렵습니다.
스키니 라벨 제도는
- FDA 규제 체계
- 특허법상 유도 침해 법리
- 제네릭 제약사의 상업적 표현과 정보 제공
이 세 요소가 복잡하게 교차하는 지점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대법원은 이번 사건을 통해,
FDA 승인 범위를 벗어나지 않은 제네릭의 마케팅 행위가 어디까지 허용되는지,
그리고 그 한계를 넘는 순간 언제 특허 침해 유도가 성립하는지를 명확히 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실무적으로 무엇이 달라질 수 있는가
이번 사건이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스키니 라벨 전략은 허가 단계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출시 이후의 모든 외부 커뮤니케이션을 포함한 종합적인 리스크 관리 문제라는 점입니다.
앞으로는
- 라벨 문언뿐 아니라
- 보도자료, 웹사이트 문구, IR 자료, 시장 규모 언급 방식
모두가 특허 리스크의 평가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이는 제네릭 제약사에게는 보다 보수적인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요구하는 신호이자,
적응증 특허를 보유한 기업에게는 라벨 이후 단계에서도 특허를 방어할 수 있는 법적 여지가 존재함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결어
미국 대법원의 이번 판단은
“스키니 라벨이 있으면 안전하다”는 기존의 단순한 전제를
보다 정교한 법적 기준으로 재구성하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특허 분쟁이 아니라,
Hatch–Waxman 체계에서 제네릭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지’를 다시 그리는 사건입니다.
라벨을 넘어 말과 행동까지 문제 되는 시대,
제네릭과 오리지널 사이의 경계는 이제 커뮤니케이션 전략까지 포함해 재정의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