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인천지방변호사협회와 인천대학교 법학연구소 세미나에서 AI 시대의 법률시장 변화를 주제로 발표를 하면서, 질의응답 시간마다 반복적으로 받은 질문이 있습니다. 이미 변호사 수가 계속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인공지능 기술까지 본격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하면 경쟁이 더 심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환경에서 변호사로서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에 대한 질문이 자연스럽게 뒤따랐습니다.
이 질문을 들을 때마다, 단순한 기술 변화에 대한 걱정보다도 한국 법률시장의 구조적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이 반영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로스쿨 제도 도입 이후 변호사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해 왔고, 최근에는 그 증가 속도가 체감될 정도로 빨라졌습니다. 여기에 경기 둔화까지 겹치면서 법률시장이 점점 포화 상태에 이르고 있다는 인식도 확산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변호사분들께서 사건 수임의 어려움과 수임료 하락 압박을 동시에 체감하고 계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AI가 변호사를 대체할 수 있다”는 논의가 더해지면, 앞으로 사건을 수임하기가 지금보다 훨씬 어려워질 것이라는 불안이 커지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제가 실무 현장에서 느끼는 변화는, AI가 새로운 위기를 만들어낸다기보다는 이미 존재하던 문제를 더 빠르게 드러내고 있다는 쪽에 가깝습니다.
AI가 가장 빠르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영역은 정형화된 법률 리서치나 반복적인 문서 작성, 표준 계약서 초안 검토와 같은 업무들입니다. 이러한 업무는 이미 오래전부터 변호사 간 차별성이 크지 않았고, 가격과 업무 처리 속도의 경쟁이 심했던 영역이기도 합니다. AI는 이러한 업무를 훨씬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만들고 있으며, 그 결과 해당 영역에서는 변호사 간 차별이 더욱 어려워지고, 가격과 속도 중심의 경쟁이 한층 더 강화되고 있습니다.
반면, 제가 실제로 자문을 하면서 AI로 대체될 것이라고 느껴본 적이 없는 영역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의뢰인들이 저에게 자주 묻는 질문은 단순히 “법적으로 가능한가요”라는 차원을 넘어서, “이 거래를 지금 진행해도 되는지”, “리스크를 어디까지 감수하는 것이 합리적인지”, “다른 선택지는 없는지”와 같은 판단의 문제입니다. 이러한 질문은 법률 지식만으로 답하기 어렵고, 사실관계와 산업의 맥락, 상대방의 의도, 그리고 그 결정에 따른 책임까지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느끼는 점은, 변호사 간의 경쟁이 전반적으로 심화된다기보다는 역할과 위치가 점점 분화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반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변호사와, 의사결정 단계에서 판단을 제공하는 변호사는 더 이상 같은 기준으로 비교되기 어렵습니다. 조금 달리 표현하자면 자신의 역할이 명확하지 않을 경우, 이러한 변화는 모두 ‘경쟁 심화’로만 더 강하게 체감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AI에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기술 자체보다 우선 자신의 위치, 즉 시장에서의 포지셔닝을 먼저 점검해 보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나는 어떤 문제를 맡는 변호사인지, 내 조언은 언제 필요한지, 사람들이 나를 찾는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과 답을 스스로 던져보셔야 하겠습니다. 저 역시 제약·바이오 분야에서 자문을 하면서, 단순히 계약서를 검토하는 역할에서 거래 구조와 리스크를 함께 고민하는 역할로 인식되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인식이 조금씩 자리 잡으면서, 의뢰인과의 관계와 제가 수행하는 업무의 범위에도 점진적인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로스쿨 이후 변호사 수 증가와 경기 둔화, 법률시장의 포화는 분명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AI는 이러한 조건 위에서 작동하며, 변호사 각자의 위치를 더 분명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경쟁은 누가 더 많은 일을 처리하느냐보다는, 어떤 판단을 맡고 그 결과에 어디까지 책임질 수 있는가의 문제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AI 시대의 변호사 경쟁은 위기의 문제가 아니라, 전문가로서 자신의 역할을 다시 정리하는 과정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질문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계시다면, 이미 중요한 준비는 시작되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현실적으로 그렇다면, 이러한 변화 속에서 변호사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이 남습니다. 거창한 전략이나 새로운 기술을 당장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오히려 실무에서 가장 먼저 점검해 볼 수 있는 것은, 지금 내가 반복적으로 처리하고 있는 업무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업무가 AI로 대체되기 쉬운 영역인지에 대한 냉정한 정리입니다.
많은 경우, 바쁘게 일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업무가 어떤 문제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단순히 의뢰가 들어오는 대로 사건을 처리하다 보면, 시간이 지날수록 특정 유형의 문제를 ‘판단하는 사람’이 아니라 ‘처리하는 사람’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 차이는 시간이 갈수록 누적되어, 수임 구조와 보수 수준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실무적으로는, 본인이 자주 받는 질문이 무엇인지부터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계약서 조항의 의미를 설명해 달라는 요청이 많은지, 아니면 그 계약을 체결해도 되는지에 대한 판단을 요구받는지에 따라 변호사의 역할은 전혀 달라집니다. 후자의 질문을 받기 시작했다면, 이미 단순한 법률 서비스의 범위를 넘어선 역할을 하고 계신 것일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이러한 판단과 관점을 스스로만 알고 있는 데 그치지 않고, 외부에 일정 부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는 과도한 마케팅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특정 산업이나 거래 유형에서 반복적으로 마주하는 리스크, 자문 과정에서 중요하게 보는 기준 등을 글이나 강의, 간단한 설명의 형태로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본인이 어떤 문제를 다루는 변호사인지에 대한 메시지는 분명해집니다. 실무에서 보면, 이러한 작은 차이가 의뢰인의 기대 수준과 상담의 깊이를 바꾸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지막으로, AI를 무작정 경계하기보다는 제한적으로라도 활용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리서치나 초안 작성과 같은 영역에서 AI를 적절히 활용하면, 변호사는 보다 중요한 판단과 구조 설계에 시간을 쓸 수 있습니다. AI를 대신 판단해 주는 존재로 볼 것이 아니라, 판단에 필요한 시간을 확보해 주는 도구로 인식하는 것이 현실적인 접근일 것입니다.
결국 AI 시대에 변호사가 할 수 있는 준비는, AI 기술을 일정 수준 이해하고 활용하는 것을 전제로 하되, 자신의 역할을 명확히 하고 책임지는 판단의 범위를 넓혀가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단기간에 완성되는 전략은 아니지만, 지금의 법률시장 환경에서는 가장 현실적이고 지속 가능한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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