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날 기업의 경쟁력은 기술과 창작물, 브랜드와 데이터 같은 무형자산에서 나옵니다.
그렇기에 IP(지식재산) 계약은 단순한 법률문서가 아니라 기업 전략의 핵심 도구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기업들은 계약의 작은 문구 하나, 정의 하나를 가볍게 넘기며, 수년 뒤 거대한 분쟁과 비용을 마주하곤 합니다. 이 글에서는 그 핵심 내용을 바탕으로, IP 계약이 왜 어려운가, 그리고 한국 기업들이 무엇을 유념해야 하는가를 에세이 형식으로 성찰해보고자 합니다.
1. 소유권은 생각보다 훨씬 모호하다
많은 기업들이 “당연히 우리가 만든 것이니 우리가 소유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계약 세계에서는 “당연한 것”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배경 IP는 누구의 것인지, 계약 수행 중 만든 개발물은 누구 것인지, 개선·파생저작물의 귀속은 어떻게 되는지—
이 질문에 명확하게 답하지 않으면, 결국 법원이 관할지 법령을 기준으로 판단하게 되고 그 결과는 예상과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IP 분쟁의 상당수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2. 공동 소유는 공정하지만, 실무적으로는 위험하다
한국 기업들은 공동 개발에 익숙하기 때문에 공동 소유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공동 소유는 누구도 실질적으로 소유하지 못하는 구조가 되기 쉽습니다.
라이선스 한 번 하려 해도 서로의 동의가 필요하고, 의견이 충돌하면 deadlock으로 이어져
사업 계획이 멈춰버리곤 합니다.
실무에서는 공동 소유를 피하고, 한쪽이 소유하되 다른 쪽은 적절한 라이선스를 부여받는 방식이 훨씬 실용적일 수 있습니다.
3. 법적 유효성을 결정하는 문장 하나의 힘
IP 양도 조항에서 “assign and transfer all right, title, and interest”와 같은 문구는 단순한 관례가 아닙니다.
일부 국가에서는 이 문구가 있어야만 양도가 법적으로 유효합니다.
서면·서명 요건도 동일합니다.
계약의 몇 줄이 전체 기술 전략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종종 잊습니다.
4. Work-for-Hire라는 착각
많은 기업들이 프리랜서, 외주 개발자, 디자이너와 일하면서
“우리가 비용을 냈으니 당연히 IP는 우리의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Work-for-Hire는 특정 조건을 충족해야만 인정되고,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창작물은 창작자의 자산으로 남습니다.
그래서 계약에는 반드시 Work-for-Hire 조항 + 양도 조항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5. 라이선스 범위가 사업의 운명을 결정한다
전 세계(global), 영구(perpetual), 독점(exclusive), 서브라이선스 가능 여부—
이 네 가지는 기업의 시장 전략, 투자 가치, 기술 주도권을 직결적으로 흔듭니다.
한국 기업들은 종종 “큰 문제는 아니겠지”라고 생각하며 범위를 모호하게 두지만,
이 부분이 분쟁의 출발점이 되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6. 불가항력은 단순히 ‘천재지변’이 아니다
IP 계약에서는 기술 제공 의무, 로열티 지급, 업데이트 제공 등
특유의 의무들이 존재합니다.
팬데믹이나 공급망 문제로 인해 기술 제공이 지연되었을 때
기존의 일반적인 불가항력 조항으로는 보호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기업들은 IP 맥락에 맞춘 맞춤형 불가항력 규정을 가져야 합니다.
7. 기밀유지 조항은 영업비밀의 생명선이다
영업비밀 보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밀유지 의무의 질과 구조입니다.
정의가 지나치게 좁아도 문제이고, 지나치게 넓어도 무효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종료 후 생존 기간이 명시되지 않으면 정보 보호는 사실상 불가능해집니다.
글로벌 파트너십을 고려하는 기업일수록
미국·EU 기준의 기밀유지 구조를 갖추는 것이 필수입니다.
8. 계약 종료 후 무엇이 남고 무엇이 사라지는가
많은 기업이 종료 조항을 가볍게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가장 큰 비용이 발생하는 구간입니다.
종료 즉시 기술 접근이 차단되면 사업이 멈출 수 있고,
반대로 종료 후에도 브랜드나 기술을 계속 사용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종료 이후의 라이선스, 전환 지원, 기술·데이터 반환 절차는 반드시 구조화되어야 합니다.
9. 계약 말미의 ‘기타 조항’이 모든 것을 결정할 때가 있다
준거법, 재판지, 면책, 통지 방식—
이른바 boilerplate 조항은 종종 사소해 보이지만,
분쟁이 발생하면 이 조항들이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기업의 리스크는 실은 이 마지막 몇 조항들에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한국 기업을 위한 실무적 시사점
한국 기업들은 공동 개발, 외주 개발, 데이터 기반 서비스가 많기 때문에
위의 10가지 위험에 더 노출되어 있습니다.
1. 관할권의 차이가 계약 효력을 180도 바꿉니다
미국·EU·중국은 IP 소유·양도·사용 규정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해외 계약에서 국내 방식 그대로 사용하시면 결코 안전하지 않습니다.
2. 공동 개발이 많아 Joint IP 위험이 더 큽니다
공동 소유는 상업화 deadlock의 대표적 원인이며,
한국 기업들은 이를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3. 기술이전·CDMO·AI 계약은 ‘범위 정의’가 생명입니다
AI 학습 데이터, 개선 IP, 배경 IP 등은 특히 섬세한 구조가 필요합니다.
4. 종료 후 IP 처리 조항은 가장 고비용 분쟁의 근원입니다
초기에 구조화하지 않으면, 종료 후 여러 해 동안 분쟁이 이어질 수 있습니다.
결론: 계약은 기술을 보호하는 방패이며, 기업의 전략적 지도입니다
IP 계약은 단순한 문서가 아니라 기업의 미래와 시장 전략을 결정하는 지도(map)입니다.
그리고 그 지도는 작은 문구 하나로 전혀 다른 길로 기업을 이끌 수 있습니다.
정교한 정의, 일관된 구조, 관할권에 대한 이해, 그리고 종료 이후까지 이어지는 관리,
반드시 한국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기술을 지키는 가장 강력한 무기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