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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케이션

AI-네이티브 바이오텍이 다시 투자자를 불러들이고 있습니다


바이오 산업을 오래 보신 분들이라면 익히 아시겠지만, 이 산업은 매력만큼이나 잔혹한 면도 분명합니다. 연구에 걸리는 시간은 길고, 소요되는 비용은 크며, 그 모든 과정의 끝에 실패가 기다리고 있을 가능성도 높습니다. 그래서인지, 최근 몇 년 동안 초기 단계 바이오텍들은 투자자들의 관심에서 조금씩 멀어져 있었습니다. 그만한 부담을 감당할 수 있는 투자자가 많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PitchBook의 최신 보고서를 읽으면서, 지금 바이오 업계에 조용하지만 근본적인 지각변동이 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AI가 그 변화를 이끌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단순히 자동화나 효율화의 도구를 넘어, 투자자가 바라보는 ‘바이오 기업의 리스크 구조’ 자체를 바꾸어 놓고 있었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AI를 태생적으로 연구개발의 중심에 둔 이른바 AI-native 바이오텍들은 그렇지 않은 기업에 비해 기업가치가 거의 두 배에 달한다고 합니다. 2024년 기준 이들 기업의 중간 밸류에이션은 7,800만 달러였고, 같은 단계의 비AI 기업들은 4,000만 달러에 머물렀습니다. 이는 AI가 바이오 연구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개발 실패율을 낮출 수 있다는 점에 대해 투자자들이 상당한 확신을 갖고 있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특히 지난 1년간 투자 흐름을 보면 그 변화가 더 뚜렷합니다. 총 32억 달러가 135개의 AI 기반 신약개발 스타트업에 투입됐고, 그중 절반 이상은 실험 시설 없이도 빠르게 수익성을 만들 수 있는 AI-Pharma Tools 분야로 흘러갔습니다. 이 분야는 자산 부담이 크지 않기 때문에, 투자자에게는 비교적 부담이 적고 성장 속도도 빠른 영역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AI 기술 자체의 변화 역시 흥미롭습니다. 초기 AI 모델이 화학 데이터와 생물학 데이터를 분석하며 타깃을 찾는 정도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비정형 생물학 데이터를 대규모로 학습해 더 강력한 예측을 하고, 새로운 분자를 직접 설계하는 단계까지 도달했습니다. PitchBook은 다음 단계로 생체 시스템을 심층적으로 모사하는 종합적 ‘인실리코 시뮬레이션’을 제시하는데, 만약 이 방향이 본격화된다면 신약개발은 실험실에서 컴퓨터 환경으로 대폭 이동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업계 전체의 구조적 변화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흐름은 한국 바이오 산업에도 여러 시사점을 던집니다. 먼저, 앞으로는 AI 기술을 연구개발 과정에 어떻게 통합했는지가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글로벌 기업들이 이미 AI-native 전략으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만큼, 기존 방식만으로는 경쟁에서 점차 뒤처질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비교적 빠르게 영향력을 확장할 수 있는 분야는 오히려 AI 기반 바이오 툴·플랫폼 사업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험 설비나 대규모 제조 인프라 없이도,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통해 충분히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IT 기반 역량을 생각하면 이 영역은 오히려 큰 기회가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법률적인 관점에서도 새로운 준비가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AI가 연구개발의 중심이 되면, 데이터의 출처와 소유권, 학습 범위, AI가 생성한 후보물질의 지식재산 귀속, 공동 연구에서의 기여도 산정, 인실리코 데이터의 규제상 인정 여부 등 기존 계약 체계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이슈들이 등장합니다. 바이오와 AI의 경계가 흐려질수록, 계약서와 법률 구조 역시 그에 맞게 재설계될 필요가 있습니다.

PitchBook 보고서를 읽으면서 제일 크게 남은 생각은 결국 하나였습니다. AI는 단순히 연구 속도를 높이는 수단을 넘어, 투자자들이 바라보는 바이오 산업의 리스크 구조를 바꾸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이미 시작됐고, 앞으로 더 가속화될 것입니다.

지금 바이오 산업에 필요한 것은 기술적인 적응뿐만 아니라, AI 시대에 맞는 연구전략, 데이터전략, 그리고 계약·법률 전략의 정교한 통합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변화의 흐름을 누가 먼저 읽고 준비하느냐에 따라, 한국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도 크게 달라질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