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8월 3일, 캘리포니아 대법원이 제약업계가 주목해 온 Gilead Tenofovir Cases (No. S283862, 2026 WL 2223748 (Cal. Aug. 3, 2026)) 판결을 선고하였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다수의견의 판시는 다음과 같습니다.
"결함 없는 의약품의 사용자에 대하여, 제약사는 더 안전하다고 주장되는 대체 의약품을 상용화할지 여부와 시기를 결정함에 있어 주의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 (원문: "drug manufacturers do not owe a duty of care to users of a nondefective drug when making decisions about whether and when to commercialize an allegedly safer alternative drug.")
이로써 캘리포니아 항소법원이 2024년 인정하였던 이른바 '혁신의무(duty to innovate)' 이론은 파기되었습니다.
1. 사실관계와 소송 경과
이 사건 원고들은 길리어드(Gilead Sciences)의 TDF(tenofovir disoproxil fumarate) 계열 HIV 치료제를 복용한 후 신장·뼈·치아 손상을 입었다고 주장하는 환자들입니다. 판결문에 나타난 개발 경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 2001년 10월: 최초의 TDF 기반 의약품 Viread, FDA 승인
- 2001년 11월: 길리어드, 대체 후보물질 TAF(tenofovir alafenamide fumarate)에 대한 IND 제출. 이후 30명(TAF 20명, TDF 10명) 대상 2주간의 phase I/II 병행 임상시험 실시
- 2004년: 길리어드, TAF의 안전성·내약성·유효성 프로파일이 TDF와 충분히 다르지 않다는 이유로 개발 중단 발표
- 2010년: TAF 개발 재개
- 2013년: TAF 첫 3상 임상 개시
- 2015년 11월: TAF, FDA 승인 (TDF 특허는 2017년 만료)
이 사건의 특이한 점은, 원고들이 자신들이 복용한 TDF 자체의 결함을 주장하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원고들은 TDF가 결함 제품이 아님을 인정하고 시장 철수를 요구하지도 않으면서, 길리어드가 2004년 당시 이미 TAF가 더 안전하고 동등하게 유효함을 알고 있었음에도 TDF 매출 잠식(cannibalization)을 우려하여 개발을 중단하였고, TDF 특허 만료 직전에 맞추어 TAF를 출시함으로써 이익을 극대화하였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즉, 대체 의약품 상용화를 부당하게 지연한 것 자체가 주의의무 위반이라는 이론입니다. 길리어드는 3상 임상 전에는 TAF가 더 안전한지 알 수 없었다고 다투었습니다.
1심(샌프란시스코 카운티 상급법원)은 길리어드의 summary judgment 신청을 기각하였고, 항소법원(제1항소구 제4부)은 사기적 은폐(fraudulent concealment) 청구에 대해서는 summary adjudication을 지시하면서도 과실(negligence) 청구는 유지하여, 제조사가 결함 없는 의약품의 사용자에 대해서도 더 안전한 대체제의 상용화 여부·시기 결정에 관한 합리적 주의의무를 부담할 수 있다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Gilead Tenofovir Cases (2024) 98 Cal.App.5th 911).
2. 대법원의 판단
(1) 결함 없이 제조물책임이 성립할 수 있는가 — "상당한 의문"
다수의견은 먼저, 제품 결함(defect)의 입증 없이 과실이든 엄격책임이든 제조물책임이 성립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상당한 의문(substantial doubt)"을 표하였습니다. 캘리포니아 판례는 제조물책임의 맥락에서 제조사의 의무를 결함 없는 제품을 설계·제조·판매할 의무로 정의해 왔고, 결함 없이도 책임이 발생하는 더 넓은 의무를 인정하면 이 확립된 법 체계와 상당한 긴장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원고들의 이론에 따르면, 확립된 결함 심사기준(risk-benefit test 등)이 규율하던 문제가 배심원의 일반적 합리성 판단으로 대체되어 버린다는 점도 지적되었습니다.
다만 다수의견은 이 쟁점을 확정적으로 판단하지는 않았습니다. 결함 요건이 모든 경우에 제조사의 일반적 주의의무를 제한하는지 여부를 결정할 필요 없이, 설령 더 넓은 의무가 존재할 수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Rowland 요소에 따라 이 사건 유형에는 의무의 예외가 인정된다는 구조를 취하였습니다.
(2) "3상과 FDA 승인 전에는 알 수 없다"
다수의견은 항소법원이 제시한 요건들이 실무상 의미 있는 제약으로 기능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대체제가 "발명(invented)" 또는 "개발(developed)"되었을 것이라는 기준에 대해서는, 발명이 화합물 착상 시점인지, 합성 시점인지, 동물·인체 시험 시점인지조차 불분명하여 두 용어 모두 모호하다고 지적하였습니다.
제조사가 대체제가 더 안전하고 동등하게 유효함을 "알았을 것(know)"이라는 요건에 대해서는, 그 전제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3상 임상시험과 FDA 승인이 완료되기 전에 의약품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충분히 알 수 있다는 전제는 의약품 개발을 규율하는 법령 체계와 모순된다는 것입니다. 다수의견은 FDA 통계를 인용하여 phase I 진입 약물 중 phase II로 진행하는 비율이 약 70%, phase II에서 phase III로 진행하는 비율이 약 33%, phase III 약물 중 성공으로 평가되는 비율이 약 25~30%에 불과하며, 임상 진입 의약품 중 FDA 승인에 이르는 것은 8개 중 1개 미만이라는 점을 지적하였습니다. 원고들이 근거로 삼은 것이 피험자 30명, 2주간의 단일 phase I/II 시험이었다는 점에서, 항소법원의 "인식(knowledge)" 요건은 개발 초기 단계에서는 사실상 충족 불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항소법원이 원용한 Mexicali Rose 판결(식당 음식 속 닭뼈 사건)에 대해서는, 상업적 식당업이라는 좁은 맥락에 명시적으로 한정된 판시로서 처방의약품 개발과는 거리가 멀다고 배척하였습니다.
(3) Rowland 요소 분석
다수의견은 Rowland v. Christian (1968) 69 Cal.2d 108의 예견가능성 요소와 공공정책 요소를 적용하였습니다.
예견가능성: 제조사는 3상 시험과 FDA 승인 전에는 약물의 안전성·유효성을 진정으로 알 수 없으므로, 개발 초기 단계에서 대체 의약품 상용화 지연이 기존 의약품 사용자에게 손해를 끼칠 것을 합리적으로 예견할 수 없습니다. 사후적으로는 거의 모든 손해가 예견가능해 보이므로("with hindsight, everything is foreseeable") 판단 기준시는 지연 결정 당시라는 점도 강조되었습니다.
인과 연결의 근접성: 상용화 지연과 손해 사이의 연결은 (i) 3상 시험의 불확실한 결과, (ii) FDA의 독립적 승인 판단, (iii) 개별 환자의 위험·편익에 따른 의사의 처방 결정이라는 다수의 개입 요소에 의존하는 "매우 희박한(highly attenuated)" 것으로 평가되었습니다. 특히 원고들 스스로 항소심에서 "여러 이유로 일부 의사와 환자는 TAF보다 TDF를 선호한다"고 인정한 점이 지적되었습니다.
도덕적 비난가능성: 대체제 개발 지연은 미충족 수요 질환에 대한 자원 배분 등 도덕적으로 중립적이거나 오히려 바람직한 이유로도 이루어질 수 있고, 이윤 동기와 도덕적 비난가능성을 동일시하면 기업을 상대로 한 사실상 모든 과실 소송에 적용되므로 이는 캘리포니아법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장래 손해 방지 및 부담: 다수의견은 혁신의무가 오히려 역유인(perverse incentives)을 창출할 위험을 상세히 설시하였습니다. 책임이 기존 치료제의 대체제에만 결부되므로, 합리적인 제조사는 소송 리스크 감소를 위해 기존 약의 점진적 개량에 자원을 투입하고 치료제가 없는 질환의 신규 치료제 개발에는 상응하는 유인을 갖지 못하게 되며, 초기 임상 데이터가 장래 과실 소송의 근거로 쓰일 것을 우려하여 백업 후보물질의 초기 연구 자체를 회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3상 임상의 비용(신규 치료제 pivotal trial 중간값 1,900만 달러의 JAMA Internal Medicine 연구 인용)과 이 사건에서 길리어드가 추산한 TAF 추가 임상·승인·출시 비용 약 1억 달러도 부담 요소로 언급되었습니다. 나아가 원고들이 이 책임 이론을 제약산업에 한정할 법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였다는 점을 지적하며, 자동차 제조사가 안전기준을 충족하는 결함 없는 차량에 특정 안전기술을 더 일찍 탑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책임을 지게 되는 등 산업 전반으로 파급될 수 있음을 경고하였습니다.
(4) "포괄적 면책"이 아니다 — 남아 있는 구제수단
Evans 대법관의 반대의견은 다수의견이 제약사에 "포괄적 면책(sweeping immunity)"을 부여한다고 비판하였으나, 다수의견은 이를 명시적으로 반박하였습니다. FDA 승인 의약품으로 피해를 입은 원고에게는 여전히 (i) 과실 설계·제조 결함·경고의무 위반 등 전통적 제조물책임 법리, (ii) 소비자보호법, (iii) 적절한 경우 커먼로상 사기 법리에 따른 구제수단이 열려 있다는 것입니다. 반대의견과 원고들이 이러한 혁신의무 이론에 따라 책임을 인정한 선례를 캘리포니아를 포함한 어느 주에서도 단 하나도 제시하지 못하였다는 점도 강조되었습니다.
(5) 재판부 구성과 별개의견
이 판결은 Groban 대법관이 집필한 다수의견에 Corrigan, Liu, Kruger, Desautels 대법관이 동조하였고, Evans 대법관이 반대의견을 냈습니다. 주목할 점은 Guerrero 대법원장의 별개의견입니다. Guerrero 대법원장은 다수의견이 결함 요건 문제를 우회하여 Rowland 예외 분석으로 나아간 것을 비판하면서, 결함으로 인한 손해의 입증은 제조사 상대 과실 청구의 본질적 요소이므로(Jiminez v. Sears, Roebuck & Co. (1971) 4 Cal.3d 379) 원고들이 결함을 주장하지 않은 것 자체로 청구가 배척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였고, 다수의견의 접근이 제조물책임법의 근본 원칙에 불필요한 불확실성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결론에만 동의하고 논리에는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Kruger 대법관도 별개의견을 냈습니다(Corrigan, Desautels 동조).
(6) 주문
대법원은 항소법원 판결을 파기하고, 1심 법원으로 하여금 summary judgment 기각 결정을 취소하고 모든 청구원인에 대하여 길리어드 승소의 summary judgment를 인용하도록 하는 직무집행영장(writ of mandate) 발부를 지시하는 취지로 환송하였습니다.
3. 시사점
이번 판결은 미국 제조물책임 법리의 기본 구조, 즉 책임의 근거는 시장에 내놓은 제품의 결함이지, 더 나은 제품을 내놓지 않은 부작위가 아니다라는 원칙을 재확인한 것입니다. 미국 시장을 겨냥해 개량 제형·후속 파이프라인을 개발하는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의 관점에서는, 후속 제품의 개발 시점과 상용화 전략이 — 적어도 캘리포니아법상으로는 — 불법행위 책임의 심사 대상이 아니라 사업적 판단의 영역으로 남게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다만 이는 기존 제품이 결함 없는 제품일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므로, 설계·경고 관련 전통적 제조물책임 리스크와 소비자보호법·사기 법리에 기한 청구 가능성은 여전히 유효하며, 백업 후보물질의 초기 임상 데이터 관리와 개발 중단·재개 의사결정의 문서화가 갖는 소송상 의미는 이 판결 이후에도 가볍지 않습니다.
참고자료
- Gilead Tenofovir Cases, No. S283862, 2026 WL 2223748 (Cal. Aug. 3, 2026) (slip op.) — 본 글의 판시 내용은 판결문 원문(다수의견 및 Guerrero 대법원장 별개의견)을 직접 확인하여 작성하였습니다.
- Gilead Tenofovir Cases (2024) 98 Cal.App.5th 911 (원심 항소법원 판결)
- Rowland v. Christian (1968) 69 Cal.2d 108
- Steven Boranian, "No Duty to Innovate: California Supreme Court Rejects New Negligence Theory", Drug & Device Law (Reed Smith), 2026. 8. 4.
본 글은 판결문 원문 및 해설 자료를 기초로 작성된 일반적 정보 제공 목적의 글이며, 구체적 사안에 대한 법률자문이 아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