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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케이션

여성 건강 기술(FemTech)의 성장과, 그 앞을 가로막는 네 가지 장벽

최근 몇 년 사이, 여성 건강 스타트업에 대한 글로벌 투자가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2024년에는 약 26억 달러 규모의 투자금이 유입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죠.
이제 ‘펨테크(FemTech)’는 단순한 틈새 시장이 아니라, 바이오산업의 주류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여성으로서, 그리고 제약바이오 분야에서 법률 자문을 수행하는 변호사로서 이 변화는 매우 고무적입니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기술만으로는 넘기 어려운 제도적 장벽들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이 글에서는 그 대표적인 네 가지 문제를 짚어보려 합니다.


1. 임상시험의 남성 중심 기준, 그리고 규제로 이어지는 편향

FemTech 기술의 근간은 여성의 생리적 특성을 이해하고 반영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임상시험 구조는 여전히 ‘건강한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 설계된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성은 가임기 배제 원칙, 생식독성 우려 등으로 인해 임상시험 참여에서 오랫동안 제외되어 왔고,
지금도 생리주기, 폐경기, 호르몬 변화 등 여성 특유의 리듬은 임상 설계나 하위 분석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고 있습니다.

2014년 국내 신약 초기 임상시험의 여성 참여 비율이 단 7%에 불과했다는 점은 이를 잘 보여줍니다.
문제는 이러한 과학적 편향이 규제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규제당국은 성별 기반 데이터를 제출하도록 명확히 요구하지 않거나, 하위 분석을 단순 권장 수준에 머물게 하면서
결국 규제 심사 과정에서도 여성의 생리적 특성이 실질적으로 고려되지 않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습니다.


2. 기술의 목적에 비해 애매한 규제 분류

두 번째 장벽은 기술의 성격에 비해 규제 지위가 모호하다는 점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생리주기 추적 앱입니다.
사용 목적에 따라 단순 건강관리 앱으로 볼 수도 있고, 피임 등 치료 목적이라면 의료기기로 분류될 수도 있죠.

미국 FDA는 2018년, ‘Natural Cycles’라는 생리주기 추적 앱을 피임 목적의 디지털 의료기기로 공식 승인한 바 있습니다.
이는 디지털 헬스 기술이 최초로 의료기기로 인정된 사례로, 동일한 기술이라도 규제당국의 해석에 따라
허가 절차, 요건, 심사 프로세스가 전혀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이러한 분류의 불확실성이 곧 예측 불가능한 리스크로 작용합니다.


3. 제도는 있지만, 현장에서는 작동하지 않는 구조

세 번째 장벽은 ‘제도가 있지만 현장에서 실효성 있게 작동하지 않는’ 현실입니다.

미국은 2018년부터 다기관 임상시험에 단일 IRB(sIRB) 사용을 의무화했습니다.
덕분에 병원별 중복 심의 없이 빠르게 임상을 개시할 수 있고,
이러한 제도적 기반은 디지털 헬스케어나 FemTech 기술의 상업화를 가속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은 공용 IRB 제도를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임상 현장에서는 병원별 IRB 심의가 여전히 일반적인 절차입니다.
생리주기 예측, 폐경기 모니터링처럼 민감하고 제한적인 데이터를 다기관에서 동시에 수집해야 하는 FemTech 기술에는
이러한 비효율성이 사업화 속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4. 낮은 투자 비중과 불리한 계약 구조

마지막 문제는 자본과 계약 구조에 있습니다.
2024년 1분기 기준, 여성 창업자가 유치한 벤처 투자 비중은 전체의 2% 미만에 불과했습니다.
특히 중·후기 단계 투자 사례는 전무했고, 대부분이 초기 단계에서 그쳤습니다.

이처럼 낮은 기업가치 평가와 투자 규모는 결국
지분 희석, 의결권 제한, 우선상환 조항 등 불리한 계약 구조를 받아들이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변호사로서 제가 실제 자문한 사례들만 봐도, 충분한 법률적 검토 없이
불리한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해 이후 운영에 제약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는 단순한 재무적 리스크를 넘어서 여성 리더십의 지속 가능성을 해치는 구조적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FemTech 기술은 이미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 기술이 현실에서 작동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제도적 기반이 필요합니다.

  • 성별 기반 임상 데이터 확보
  • 기술 목적에 맞는 유연한 규제 설계
  • 공용 IRB 와 같은 제도의 실질적 운영
  • 여성 창업자를 위한 법률적, 재정적, 정책적 지원

이러한 변화가 함께 이루어질 때,
여성 건강 산업은 단지 특정 성별을 위한 시장이 아니라
산업의 포용성, 의료의 형평성,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보여주는 지표가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