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가며
2026년 3월 5일, 미국 법무부(Department of Justice, 이하 "DOJ")는 의료기기 회사 ExThera Medical Corporation(이하"ExThera")과 그 전직 최고규제책임자(Chief Regulatory Officer, 이하 "CRO")를 상대로 한 형사 합의 결과를 공식 발표하였습니다.
혐의의 핵심은 단순합니다. 임상 환자가 사망하였는데, 이를 FDA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규정 위반 사례가 아닙니다. 제약·바이오·의료기기 업계에서 일하는 모든 분들 — 경영진, 규제 담당자, 임상 담당자, 그리고 법무·컴플라이언스 실무자들 — 이 반드시 숙지해야 할 선례입니다. 특히 최근 한국 기업들의 글로벌 임상시험 참여 및 해외 유통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이 사건이 가지는 시사점은 매우 큽니다.
사건 개요
ExThera Medical Corporation은 어떤 회사인가
ExThera는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에 본사를 둔 의료기술 회사로, 환자의 혈액에서 병원체를 제거하는 혈액 여과 장치(blood filtration device)를 개발·제조하였습니다.
해당 기기는 미국 내 어떠한 의학적 적응증에 대해서도 FDA로부터 정식 판매 허가(marketing authorization)를 받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다만 일부 COVID-19 관련 적응증에 대한 긴급사용승인(Emergency Use Authorization, EUA)을 취득하였고, 패혈증 및 특정 유형의 췌장암 치료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용 의료기기 면제(Investigational Device Exemption, IDE) 또한 승인받은 상태였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가
2024년, 미국인 암 환자 2명이 앤티가(Antigua)의 한 클리닉을 방문하여 이 기기를 이용한 치료를 받았습니다. 치료 과정에서 두 환자의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었고, 두 사람은 며칠 간격으로 모두 사망하였습니다.
당시 ExThera의 CRO였던 Sanja Ilic(58세, 캘리포니아주 칼스배드 거주)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니, 그보다 더한 사실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앤티가 클리닉 치료 개시 전부터 이미 ExThera의 경영진 및 규제 담당 직원들에게 해당 기기 사용 시 환자에게 "생명을 위협하는(life-threatening)"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음을 고지한 바 있었습니다. 즉, 위험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망 사실을 FDA에 보고하지 않은 것입니다.
DOJ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Ilic가 이상반응을 보고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은 두 가지 재정적 동기 때문이었습니다.
• 당시 ExThera는 해당 기기와 관련된 유통 계약을 통해 1,000만 달러를 확보한 상태였으며 추가 수익 가능성까지 있었습니다.
• Ilic 본인이 ExThera의 최초 미국 임상시험을 총괄하고 있었습니다. 부정적인 이상반응 보고서가 제출될 경우, 임상시험 파트너들이 참여를 철회하고 FDA의 규제 조사가 촉발될 수 있었습니다.
Ilic는 법적 의무 이행 대신 은폐를 선택하였습니다. 이후 언론에서 해당 기기 관련 보도가 이루어지고 Ilic가 ExThera에서 해고된 뒤에야, ExThera는 미국 외에서의 암 치료 사례에 관한 이상반응 보고서를 뒤늦게 FDA에 제출하였습니다.
법적 쟁점 분석
이상반응 보고 의무의 법적 근거
미국에서 이상반응 보고 의무는 연방식품의약품화장품법(Federal Food, Drug, and Cosmetic Act, FDCA)에 근거합니다. 구체적으로는 21 U.S.C. § 331(ccc)(3)이 이상반응 미보고를 금지 행위로 규정하고, 21 U.S.C. § 333이 위반에 대한 민·형사 제재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상반응 보고 의무는 의약품, 생물의약품, 의료기기, 화장품, 건강기능식품 등 FDA 규제 대상 제품 전반에 걸쳐 적용됩니다. 이 보고 체계는 FDA 시판 후 감시(post-market surveillance) 시스템의 핵심으로서, 규제당국이 새로운 안전 신호를 조기에 감지할 수 있게 하는 근본적인 장치입니다.
왜 민사가 아닌 형사인가
실무상 이상반응 보고 위반은 FDA 경고장(Warning Letter)이나 기타 행정·민사 조치로 처리되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2021년 이후에만 FDA는 이상반응 미제출을 이유로 12건 이상의 경고장을 발행하였습니다.
DOJ가 형사 기소를 선택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 요소가 결합할 때입니다.
• 중대한 환자 위해(significant patient harm)의 발생
• 기망 또는 오도의 의도(intent to defraud or mislead)가 인정되는 경우
ExThera 사건은 두 요건을 모두 충족하였습니다. 환자 2명이 사망하였고, 재정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고의적 은폐가 있었습니다.
FDCA는 엄격책임(strict liability) 법률로서, 경범죄(misdemeanor)의 경우 고의·과실의 입증 없이도 처벌이 가능합니다. 다만 2025년 5월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Executive Order No. 14294)은 엄격책임 형사 규정을 일반적으로 지양한다는 방침을 표명한 바 있어, 향후 이 분야의 집행 기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추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개인 형사책임 — CEO가 아닌 CRO가 기소되었다
이 사건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기소된 것은 CEO가 아니라 CRO, 즉 규제 담당 책임자였습니다. 종전에는 DOJ가 기업 범죄를 다룰 때 Responsible Corporate Officer Doctrine을 적용하여 주로 CEO 등 최고위 경영진을 기소 대상으로 삼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ExThera 사건은 이 패턴이 변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DOJ는 이제 "해당 행위에 직접적으로 책임이 있는 사람"을 기소합니다.
Ilic는 이상반응 미보고로 인한 FDA 기망 혐의(21 U.S.C. § 331(ccc)(3)) 1건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였으며, 다음의 제재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 최대 징역 3년
• 가석방 후 보호관찰 1년
• 최대 25만 달러 또는 총 이득·손실의 2배에 해당하는 벌금 (18 U.S.C. § 3571)
• 몰수 및 배상
기업 해결 — 기소유예협약(DPA)의 내용
ExThera는 3년간의 기소유예협약(Deferred Prosecution Agreement, DPA)을 체결하였으며,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형사 벌금 75만 달러 (회사 재정 사정 감안하여 감액), 60일 이내 에스크로 예치
• 이익 몰수 약 570만 달러 (USD 5,694,750)에 합의
• DOJ와의 지속적 협력 의무, 컴플라이언스·윤리 프로그램 구축 의무, 시정 조치 이행 보고 의무
정부가 비교적 유리한 조건으로 합의한 것은 회사의 잔여 운영이 최소화된 상태라는 점, 기소 이후 명확한 책임 인정과 전면적 협력을 보인 점이 참작되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자발적·적시적 자체신고(voluntary and timely self-disclosure)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번 조치는 DOJ 의료사기 전담팀(Health Care Fraud Unit)의 뉴잉글랜드 스트라이크포스가 매사추세츠로 관할을 확대한 이후 최초의 기업 피의자 해결 사례이기도 합니다.
비교 선례 — ExThera는 고립된 사례가 아니다
ExThera 사건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맥락은, 이것이 전혀 새로운 종류의 집행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 Magellan Diagnostics (2024): 혈중납 검사 기기의 오작동을 은폐하고 필수 보고서 제출을 수개월간 지연한 혐의로 유죄를 인정하고 4,200만 달러를 납부하였습니다.
• GlaxoSmithKline (2012): 안전성 데이터 미보고 등의 혐의를 포함하여 30억 달러를 납부하고 유죄를 인정하였습니다.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의료사기 합의 중 하나였습니다.
ExThera와 Magellan 이외에도, 2011년 이후 DOJ와 FDA는 이상반응 미보고를 이유로 기업 및 개인을 상대로 최소 6건의 형사 사건을 추가로 진행한 바 있어, 관련 형사 집행은 총 최소 8건에 달합니다. 이상반응 미보고는 반복적으로 형사 집행 대상이 되고 있는 영역입니다.
한국 기업에 대한 실무 시사점
역외 임상시험과 보고 의무
ExThera 사건에서 문제가 된 이상반응은 미국 밖, 앤티가(카리브해)의 클리닉에서 발생하였습니다. FDA의 이상반응 보고 의무는 미국 내에서 발생한 사건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에서 IDE 또는 IND를 보유하고 진행 중인 임상시험과 관련된 한, 해외에서 발생한 이상반응도 보고 의무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한국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FDA IDE 또는 IND 하에 글로벌 임상시험을 진행하거나, 미국 파트너사와의 계약을 통해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경우, 이상반응 보고 체계를 단순히 한국 식약처 기준이 아닌 FDA 기준으로도 점검해야 합니다.
"상업적 이익"이 은폐의 동기가 되는 순간
이번 사건에서 DOJ가 주목한 핵심 요소는 재정적 동기의 존재였습니다. 라이선스 계약, 유통 협약, 임상 파트너십 등 상업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상황에서 이상반응 정보가 보고되지 않을 경우, 이는 "단순 과실"이 아닌 "고의적 기망"으로 평가될 위험이 있습니다. 글로벌 딜이 진행 중인 상황일수록, 오히려 안전 정보 보고 의무를 더욱 철저히 이행해야 한다는 역설적인 교훈을 이 사건은 말해줍니다.
개인 책임의 범위 — 규제팀·임상팀 담당자에게
이 사건은 "나는 결정권자가 아니다"라는 항변이 더 이상 충분한 방어 논리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규제 제출 업무 담당자, 약물감시 담당자, 임상 안전성 모니터링 담당자는 각자의 역할에서 보고 의무를 직접 인지하고 이행할 책임이 있으며, 그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을 때는 개인 형사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마치며
이번 ExThera 사건이 우리에게 남기는 교훈은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
• 이상반응 보고 의무는 "규제 형식"이 아닌 "핵심 법적 의무"입니다. 이를 위반하는 것은 경고장에 그치지 않고 형사 기소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 상업적 이해관계가 클수록 보고 의무 이행의 중요성은 높아집니다. 계약 가치, 임상 파트너십 등 재정적 고려가 안전 정보 보고를 방해하는 요인이 되었다고 인정될 경우, 고의성 추정이 강화됩니다.
• CEO만이 아닌 규제 실무 담당자도 개인 형사책임의 대상입니다. 직책의 높낮이가 아니라 해당 행위에 대한 직접적 책임 여부가 기준입니다.
미국 FDA와 DOJ는 이 분야의 집행 의지를 지속적으로 천명하고 있습니다. 한국 제약·바이오·의료기기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FDA 규제 환경에 노출되는 빈도가 높아질수록, 이상반응 보고 컴플라이언스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가 됩니다.
참고 자료 및 출처
U.S. Department of Justice, Magellan Diagnostics Agrees to Plead Guilty and Pay $42 Million to Resolve Criminal Charges, May 21, 2024.
U.S. Department of Justice, GlaxoSmithKline to Plead Guilty and Pay $3 Billion to Resolve Fraud Allegations and Failure to Report Safety Data, July 2, 2012.
21 U.S.C. § 331(ccc)(3); 21 U.S.C. § 333.
21 C.F.R. Part 820 (Quality Management System Regulation, QMSR).
Executive Order No. 14294, 90 Fed. Reg. 20363, May 9, 2025 (Fighting Overcriminalization in Federal Regu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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