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의 바이오 스타트업인 Siren Biotechnology가 매우 독특한 자금 조달 방식을 통해 유전자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이 기업은 고등급 교모세포종(Glioma)이라는 난치성 뇌종양을 치료하기 위한 유전자 치료제를 개발 중인데, 벤처캐피탈(VC) 대신 일반 대중으로부터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자금을 모집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 기업은 미국의 대표적인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인 Wefunder를 활용하고 있으며, 개인 투자자들은 최소 100달러부터 투자가 가능합니다. 단순히 ‘소액 투자’의 문제가 아니라, 치료제의 대상자였던 환자와 그 가족이 개발 과정의 투자자이자 동반자로 참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이처럼 의료의 소비자가 개발의 주체로 전환되는 구조는 의료 산업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가 미국에서 가능했던 이유는 제도적 기반과 시장 환경, 그리고 투자 문화의 성숙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우선, 미국은 2012년 제정된 JOBS Act를 통해 ‘Regulation Crowdfunding’을 도입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비상장 스타트업이 일정한 조건 하에 일반 투자자에게도 지분을 공개하고 자금을 모집할 수 있게 되었고, SEC(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발행기업에 대한 정보공개 요건 및 투자자 보호 규정을 마련하였습니다.
더불어 미국은 바이오 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투자자층이 존재하고, 임상 실패 가능성이나 장기적인 수익 실현 기간 등 고위험 구조를 수용할 수 있는 시장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사회적 가치에 기반한 투자, 즉 ‘임팩트 인베스팅(impact investing)’이 비교적 잘 정착되어 있어, 단순한 수익을 넘어 질병 해결이라는 목적에 공감하는 투자자들이 실제로 존재합니다.
반면, 한국에서는 아직 이러한 모델을 적용하기에는 법적, 문화적 제약이 큽니다. 현행 「자본시장법」상 증권형 크라우드펀딩은 연간 총 모집금액이나, 투자자당 투자 한도 등의 조건이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으며, 이는 신약개발과 같은 장기·고위험 프로젝트에는 구조적으로 부적합한 환경입니다. 또한 바이오 기술에 대한 일반 대중의 이해도와 투자 경험이 부족하여, 플랫폼 사업자들도 신약 개발 기업의 펀딩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윤리적·법률적 리스크입니다. 환자나 보호자가 기대를 가지고 투자에 참여했을 경우, 치료 실패나 부작용이 발생했을 때 그 피해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자칫하면 투자 유치를 목적으로 치료 가능성이나 개발 성과를 과장하거나, ‘치료를 받기 위해 투자했다’는 오해를 낳을 가능성도 있으며, 이는 법적 분쟁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Siren Biotechnology의 사례는 단순한 자금 조달 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의료 소비자였던 환자가 치료제 개발의 참여자로 전환되는 흐름을 보여주는 중요한 신호입니다. 이는 바이오 산업의 민주화와 환자 중심 R&D의 방향성을 제시하며, 국내에서도 향후 후원형 크라우드펀딩이나 공익 재단을 통한 연구비 유입, 기술특례상장과 연계된 공공 참여 모델 등을 포함한 제도 개선과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을 수용할 수 있을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제도적·윤리적 장치를 마련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봐야 할 시점입니다.